교회의 윤리적 부패 2023년 2월 7일 수정
내용 목차
서론 현대 교회의 문제는 교리적 배교와 타협과 혼동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윤리적 부패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난다. 특히, 교회들의 전통적인 경건한 예배 형식이 세속화 되고 육신적 즐거움을 만족시키는 오락적 요소들이 도입되고 있다. 현대 기독교 음악은 록 스타일과 랩 스타일을 도입하여 세속 음악과 구별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또 남녀 평등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안수하여 세우는 교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교회들은 앞을 다투어 낙태를 정당화 하고 동성애를 용납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심지어 안락사를 인정하는 교회들도 나타났다.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계의 이러한 이상 풍조들을 분별하며 배격하고 교회의 순결성을 지켜 하나님께서 신구약성경에 교훈하신 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분석 요즈음 일부 교회들에서는 '열린 예배'라고 하여서 교회의 전통적 예배 모범을 깨뜨리고 예배 시간에 멀티비젼(대형 자막에 비쳐지는 그림들), 드라마, 무용, 세속적 형식(락이나 랩 스타일)의 복음성가와 밴드, 혹은 심지어 청바지 형태의 복장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교회들은 '문화학교'를 개설하여 영어 회화, 꽃꽂이, 바이올린 등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런 경향들은 일찌기 자유주의적 교회들에서 시도되었던 바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보수주의적 혹은 복음주의적이라고 하는 교회들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영성'(靈性)이 있는 활동이며, 심지어 이런 교회들이 '사도적 모범을 좇는 교회들'이라고 선전된다. 또 이런 류의 교회들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청중들을 모으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교회가 목회의 성공이라고 인식하는 대중의 평가 방식에 이끌리어, 많은 목사들은 '여하튼 교회가 숫적으로 커지고 봐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조영엽 박사의 증거 조영엽 박사는 열린 예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조영엽, 열린 예배란 무엇인가?). 열린 예배란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에 일찌기 없었던, 지금까지의 전통적 예배의식과는 전연 판이한 새로운 형태의 예배로서 이 시대의 세속적 문화와 표현방법으로 예배의 형태를 바꾼 세속화된 교회의 타락한 예배의 형태를 말한다. 열린 예배는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적인 예배 의식을 완전히 뜯어고친 새로운 형태의 예배 형식이다. . . . 열린 예배를 일명 "사랑의 공동체 예배"라고도 한다. 열린 예배라는 말은 영어의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한 예배 즉 이웃초청 전도집회와 같은 성격을 띤 예배를 말한다. 열린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열린 예배를 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메타 춰취'(meta-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타 춰취'란 '전향하는 교회' 혹은 '되어가는 교회'라는 뜻으로 전통적 예배의식에 대한 사고 방식, 의식 구조, 예배 형태를 완전히 전환하는 교회를 말한다(Carl F. George, The Coming Church Revolution, pp. 26, 27). 죠지는 그의 또 다른 책 교회 성장의 장애물들을 파괴하는 법(How to break growth barriers) 제3부에서 열린 예배를 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열린 예배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들을 다 제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외형적 구조의 변경도 강조한다. 강대상을 큰 강대상 대신에 작은 이동식 탁자로 대치한다. 의자는 등받침이 없는 것을 놓고 거기에 걸터앉는다. 강단을 무대로 전환하여 노래나 춤이나 연극을 할 수 있도록 요란스런 조명 세트를 장치한다. 조화 또는 생화로 강대상 좌우를 다 꽉 채운다. 대형 자막 또는 대형 전광판을 설치한다. 고도의 방송용 음향 장비를 설치한다. 에드 답손(Ed Dobson)은 그의 책 구도자 예배(Seeker Sensive Service) 제2부에서 열린 예배는 형식에 매이지 말 것, 현대적일 것, 강요하지 말 것, 편안하게 해줄 것 등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형식에 매이지 않기 위해 목사나 안내 위원이나 성가대원은 모두 청바지나 또는 가벼운 옷들을 입으며, 현대적이기 위해 전자 기타, 드럼들, 심벌즈, 키보드 등을 사용하여 기독교적 록 음악을 연주한다. 또 강요하지 않기 위해 공개적으로 초청하거나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강대상 주변을 재단장하여 교회 강단처럼 보이지 않게 한다. 열린 예배 보는 사람들은 예배를 하나의 축제 개념으로 바꾸었다. 죠지는 그의 책 다가오는 교회 혁명(The Coming Church Revolution) 1부에서와 미래를 위해 당신의 교회를 준비하라(Prepare Your Church for the Future) 4부에서, 그리고 로버트 로간(Robert Logan)은 그의 책 교회 성장 저편에(Beyond Church Growth)에서 예배를 하나의 축제(event, festival) 개념으로 바꾸었다. 열린 예배를 보는 교회들은 찬송 대신 소위 현대 복음송, 현대 기독교 음악(CCM), 크리스챤 록 음악을 부른다.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릭 워런(Rick Warren)은 크리스챤 록 음악을 '새 노래'라고 말하면서 새 노래를 부르라고 강조한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가 시무하는 교회가 현대 팝송과 록 음악을 채택한 이유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우리 교인의 96%가 성인 현대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새들백 교회에서 우리가 사용하기로 선택한 주요 음악 스타일이다," "우리는 열린 예배에서 찬송은 더 이상 부르지 않기로 전략적 결정을 세웠다"(한역, 318쪽).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교회에 전도의 대상으로 정해준 종류의 사람들에게 맞는 음악을 선택해야 한다"(313쪽), "나는 음악의 스타일이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라고 판단될 수 있다는 의견에 반대한다. 누가 이것을 결정하는가?"(313쪽), "교회도 어느 한 특정 형태만 신성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314쪽), "아주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통하여 메시지는 전달될 수 있다"라고 한다. 열린 예배를 보는 교회들의 대부분은 설교의 내용이 빈약하고 말씀에 은혜가 없다. 설교는 예화, 간증, 재담,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하나님, 죄, 심판, 회개, 예수님의 속죄의 피, 믿음, 구원, 지옥 등의 근본 교리들이 강조되지 않는다. 또 거룩함, 고난, 인내, 영적 싸움 등이 강조되지 않는다. 열린 예배 보는 교회들은 때때로 연극으로 설교를 대신한다. 예를 들면 하와가 아담을 꾀이는 장면,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이는 장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상,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 등을 재현할 때 어떻게 경건한 예배에 조화될 수 있겠는가? 열린 예배를 주창하는 자들은 목사를 목장주(Rancher)로, 신도를 고객(Customer)으로, 교회를 기업체(Enterprise)로 간주한다. 칼 죠지는 교회 성장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법(How to Break Growth Barriers) 제2부에서, 맥가반(McGavarn)은 교회 성장을 위한 이해(Understanding Church Growth) 제5부에서, 목사를 목장주로, 신도를 고객으로, 교회를 하나의 사(私)기업체로 간주하였다. 미국에서 열린 예배를 보는 대표적 교회들 중의 하나인 윌로 크릭 공동체 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에 전화하면(미국 847-765-0070) '고객 서비스입니다'(Customer Service)라고 전화를 받는다. 릭 워런(Rick Warren) 릭 워런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목사이며 '목적에 이끌리는 교회를 건립하기' 연수회의 지도자이다. 1998년 1월, 워런은 한 세미나에서 전통적 교회를 극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변형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1) 현대적 스타일의, 비(非)위협적 '구도자(求道者) 집회'가 전통적 일요일 예배를 대체해야 한다. (2) 복장은 평상복이어야 한다. (3)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4) 설교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똑같이, 종종 심리학과 격려적인 성경본문을 섞는 설교 후에, 자신들에 대해 좀더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오직 긍정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5) 교회의 사역들은 대중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도록, 우울증, 무절제한 식사, 불임(不姙), 동성연애자들의 가족이나 친구, 낙태 후의 일, 별거(別居) 등을 위한 후원 그룹들을 가지고 준비되어야 한다. (6) 교리적 교훈은 일요일들에 교회 전체에게 주지 말고, 예배 시간과 별도로 소그룹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7)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 타협의 정신이 우세해야 한다(Foundation, 1998년 3-4월호). 그러나 이러한 세속적인 에큐메니칼 '구도자' 교회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할 지는 모르나, 그것들은 비성경적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6월 15일.) 릭 워런은 '구도자 집회'의 음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음악의 가사들이 더 근래의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악의 스타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날마다 듣는 것이어야 한다." 릭 워런의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음향시설, 밴드, 노래하는 이들과 연주 등의 오락 구성물은 어떤 세속적 록 연주회의 것과도 경쟁할 만하다. 워런은 말하기를, 교회가 해야 할 첫번째 일들 중의 하나는 '오르간을 밴드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했다. . . . 교회 찬양대의 목적은 '독창 연주자를 배경음악으로 후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찬양대로 하여금 직접 노래하게 하는 것보다 그것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90년대의 방식이다'고 하였다." 워런은 또 말하기를, 몰아대는 비트를 가진 큰 소리의, 쉰 목소리의 음악이 그의 회중들이 듣는 종류의 음악이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주말 집회 때 정말, 정말 소리가 크다. . . . 나는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자 그 이유는, 어린아이 같은 대중들은 음악을 느끼기를 원하지, 단지 그것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전통적 음악의 사용을 주장하는 것을 우상숭배의 죄와 동일시 하였고 또 부언하기를, "모든 좋은 음악이 200년전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얇게 덮인 인종차별주의 . . . 문화적 엘리트 의식이다"라고 하였다. (Foundation, 1998년 3-4월호; Calvary Contender, 1998년 6월 15일.) 팀 포터 목사는 "영적이지 않고도 성공적인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릭 워런의 방법들과 그의 책 목적에 이끌린 교회(The Purpose Driven Church)의 내용들을 검토한다. 워런의 책은 W. A. 크리스웰의 서문과 더불어 로버트 슐러, 빌 브라이트, 풀러 신학교 교수 아치볼드 하트, 그리고 연합감리교회의 에스라 얼 죤스의 찬동을 얻었다. 포터는 몇 가지 철학적 및 신학적 결점들과 기타 문제점들을 열거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장사술에 이끌린 목회 사역은 불신자의 요구에 응하므로 결국 불신앙에 이르게 될 암(癌)이다"라고 하였다. (Visitor, 1998년 8월호; Calvary Contender, 1998년 10월 1일).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시설들,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들, 그리고 오락을 위해 교회를 찾고, 신학이나 신앙사상을 위해 교회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적 사회활동(YMCA 같은)이나 종교적 록 콘서트의 혼합물을 찾고 있다(Christian News, 1999년 5월 10일). 슬프게도, 대형교회의 흥미 추구자들은 바른 교리와 거룩한 생활에 낮은 우선 순위를 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6월 15일.) 성경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씀했다(딤후 4:3). 비평 그러나 이런 류의 교회 형태, 목회 형태는 심히 불성실하고 인위적이다. 우선, 정말 '열린 예배'의 형식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먼저 기도와 성경연구와 신중한 토론을 통해 목사들의 임직 서약 때 하나님 앞에서 수락했던 '예배 모범'을 먼저 고쳐야 할 것이다. 어떻게 목사들이 신앙양심의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으로 수락했던 예배 모범과 역행하는 예배 형식을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엄숙하고 질서 있게 행해지고 예배 음악들이 아름답고 안정되게 연주되는 것이 과연 합당하지 않은가? 성경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씀했다(시 96:9). 또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라고 말했고(고전 14:33), 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빌 1:9, 10). 우리는 질서 있고 가장 아름답고 선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또 성경은 분명히 예배의 순서가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보이고 있다. 고린도전서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런 말씀은 전통적 예배 의식이 성경적임을 보인다. 또한, 교회의 문화적 행사들은 성경의 교훈들에도, 초대 교회의 모범에도 맞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연의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일이다. 특히, 전도는 예수님 자신의 사명이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하였다. 어느 시대이든지, 교회는 오직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은 단지 개인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만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 아니고, 또한 교회 생활과 목회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인간적 생각과 지혜로 예배하거나 교회를 운영하지 말고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예배하고 목회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심히 혼란스런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지시하는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우리 모두는 성경이 보이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고 목회해야 한다.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1999년 7월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WCF)의 한 결의문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접촉하고 '구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세속적인 상업적 경영전략들(예를 들어, 헐리우드 영화들, 록 음악)을 사용하는 일부 목사들에 대해 경고하였다. 그 결의문은 "바로 이 사람들, 특히 에드 답슨이 근본주의자들과 성경적 분리주의자들을 율법주의자들이라고 지칭한다"고 말했다. 그 결의문에 의하면, "이 상업적 경영방법론은 미국에서 빌 하이벨즈와 릭 워런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통하여 시작되었으나, 온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 그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 결의문은, "근본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41-47의 교회예배형태를 따르고, 요한1서 2:15-17의 경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일.) 20세기 교회 내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보이스(Voice)지 1999년 12월호의 한 글은 오늘날 교회들의 풍조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많은 교회들이 프로그램으로 기도를, 사람들로 능력을, 오락으로 참된 예배를, 번영으로 순수성을, 조직체적 일치로 더럽혀지지 않은 복음에 대한 충성을 대치하였다. . . . 실용주의(實用主義)가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을 엄습하여 교회에서 교인수가 느는 것이 복(福)의 기준으로 간주되고 교회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취하든지 정당화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에 사람들을 포함시키려는 이 과정을 방해할 모든 것을 제거하는데 큰 강조점을 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으로 재(再)정의된다. 칭의(稱義)의 교리가 매우 교묘하게 정의됨으로써 천주교인들은 교회를 연합시키려는 노력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거룩에 대한 이해는, 사람이 생활방식 때문에 용납할 만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비난받지 않도록 조정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과 접촉함'이라는 공통적 목표가 본질적 신학 영역들에서의 교리적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일치의 기초가 된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1월 15일.)
분석 오늘날 교회 음악은 급속히 변질되고 있다. 이전에 술집이나 댄스 홀에서 들을 수 있었던 종류의 음악들이 버젓이 교회 안에서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미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그 증거를 수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최근의 몇 가지 예들을 들어보자. 죤 비새그노 박사의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제일침례교회(남침례교단)는 그 교회의 솔리드 록 카페에서 1994년 행사로 엘비스 대회와 비틀즈 음악 연주를 가졌다. 알 엘 히머즈(R. L. Hymers) 2세 박사는 죽어가는 국가를 향한 설교(Preaching To A Dying Nation)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단지 이 저녁 예배가 완전히 은사주의적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 . . 안내 위원들은 귀걸이를 하고 짧은 바지와 모자를 쓴 남자들이었다. . . . 우리는 나이트 클럽이나 록 컨서트나 마약 소굴에 들어왔을 때 느꼈을 것처럼 부적절하다고 느꼈다. . . . [그러나] 그 교회는 남침례교단 안에서 '보수적' 교회들 중의 하나라고 간주된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0월 15일.) 미국 남침례교단의 W. A. 크리스웰 목사는 달라스의 역사적 제일침례교회의 원로목사이며 경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달라스 모닝 뉴스(Dallas Morning News) 1998년 8월 1일자의 한 글에서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에서 케이던스(Cadence)라는 새로운 청년 사역을 시작한 7월 25일 하드코어-어돈(Hard-Core-a-Thon) 연주회 동안 그 밤에 젊은이들은 떠들석하게 춤을 추었으며, "떠들석한 춤과 천둥 같은 기타들과 크리스챤의 경건으로 어울러진" 그 연주회로 인하여 "달라스 제일 침례교회의 부속건물인 그 장엄한 스펄젼 해리스 빌딩은 흔들린 것 같았다"고 보도되었다. (Fundamentalist Digest, 1998년 7-8월호; Calvary Contender, 1998년 9월 1일.) 미국 남침례교단에서는 2000년 신년 전야제가 유스링크(YouthLink) 2000의 7지역들에서 3일밤, 2일낮 밀레니엄 축제로 치루어졌었다. 4개의 남침례교 기관들에서 후원한 이 행사는 남침례교 역사상 가장 큰 청년 모임이었다(Sword of the Lord, 2000년 2월 18일). 그 모임은 4만 6천명 이상의 남침례교 청년들을 모았고 그들은 미국 내에서 알려진 '기독교' 록 밴드들에 의해 귀가 찢어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찬양과 예배 음악을 즐겼고 약 새벽 2시까지 웃으며 노래하며 소리치며 춤추었다고 한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3월 15일.)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 계열들에서 흔히 세속적, 관능적 현대 기독교 음악(CCM)과 단정치 못한 복장을 특징으로 하는 춤에 대한 경향이 있는 것은 슬픈 일이며, 그것은 어떤 근본주의적 교회들 속에도 침투하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많은 교회 음악들도 기독교적이지 않고 세속적이게 보인다. 기독교 방송국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들, 기독교 서점들에서 파는 찬송 테이프들 가운데 그런 것들이 적지 않다. 많은 교회 음악들이 리듬이나 템포에 있어서 세속 음악과 비슷해졌다. 째즈나 록 스타일의 경박한 음악들이 교회 속에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기도원들에서 연주되는 밴드나 전도집회시 세우는 밴드들은 완전히 세상적인 기분이 든다. 심지어 신학교들에서도 그런 류의 밴드가 연주되고 그런 류의 노래들이 불리워지고 있다. 경건하고 아름다운 교회 음악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비평 음악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음악은 하나님을 섬기는 한 방법이다(시 150편; 엡 5:19). 그러나 음악은 또한 옛날부터 이방 종교들이나 우상 숭배들과도 관계가 깊었다(출 32:17-19; 단 3: 5). 하나님은 경건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요구하신다(시 96:8, 9).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을 정죄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헛된 노래를 금하셨다(출 20:7; 암 6:5). 그러나 이방 종교들이나 우상 숭배들은 육신적인 음악, 무질서와 광란의 음악을 사용하였다. 현대 기독교 음악(CCM)의 다수는 크리스챤 록 음악이다. 복음송들의 다수도 그러하다. 그러면 록 음악이란 무엇인가? 록 음악은 1950년대에 생긴 것으로서 5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60년대에 비틀즈로부터 80년대 마이클 잭슨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음악 형태를 가리킨다. 조영엽 박사의 증거 조영엽 박사는 현대의 록 음악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증거하였다(조영엽, 열린 예배란 무엇인가?). 록 앤드 롤(rock and roll)이란 명칭은 미국의 방송 음악 진행자이었던 알란 후리드(Aland Freed)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었는데, 성적, 육체적 움직임을 표현한 말이다(Webster's New World Dictionary, 3판, p. 1161; O. T. Spence, Straightway, vol. 25, p. 3). 시카고 대학의 알란 블룸 교수는 말하기를, "록 음악은 오직 한가지인 성적 욕망에만 마음을 끈다"고 하였다(Allan Bloom,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 <1987>, p. 73). 역사적으로, 록 음악은 블루스, 컨츄리 음악, 리듬 음악 등이 혼합되어 생겼다. 블루스는 미국 동남부 흑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흑인들의 대중 가요이다. 블루스 음악의 가사들은 대부분 노예, 가난 등의 슬픈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곡들은 재즈의 형태를 취한다.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트롬본이나 섹스폰 같은 악기들을 연주하며 쉰 목소리 같은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리듬 음악은 몸을 좌우로, 앞뒤로, 상하로 강하게 떨며 흔들며 움직이며 성적 자극이 있게 부른다. 여기에서 나온 록 음악의 한 특징은 고음(高音)이다. 록 음악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고음으로 사람들의 혼을 뺀다. 대형 제트 비행기는 이륙시 대략 120 데시벨(db)의 소음을 내며, 천둥 번개의 최고 기록은 약 125 데시벨인데, 록 콘서트에서의 고음은 대략 130-140 데시벨이라고 한다(Frank Garlock and Kurt Woetzel, Music in the Balance, p. 153). 록 음악의 다른 한 특징은 반복이다. 반복 자체만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질적 가사 내용들,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미친 듯한 고함 소리, 기타, 드럼, 심벌즈 같은 악기들의 요란한 소리들이 계속 끊임없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록 음악에 도취하게 된다. 반복은 최면 효과를 가져온다. 록 음악에서 중요한 다른 한 특징은 비트(박자)이다. 록 음악에 있어서 강하게 몰아치는 비트,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비트 그리고 부정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비트 등은 다른 모든 형태의 음악들과 구별된다. 찰스 브라운은 "아마도 록 음악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비트이다. 록 음악은 비트 때문에 다른 음악들과는 구별된다"라고 말하였다(Charles T. Brown, The Art of Rock and Roll, 1983. p. 42). 이를 위해 록 음악에서는 드럼, 심벌즈 등과 더불어 기타가 주 악기로 사용된다. 록 음악의 비트는 강하게 몰아붙이는 비트와 약약강격(弱弱强格, ana- pestic) 비트이다. 약약강격 비트란 박자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역행하는 반항적 박자를 가리킨다. 박자의 기본 원칙은 "강"이 첫 박자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4박자는 강-약-중강-약이 된다. 그러나 록 음악은 박자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약박자가 먼저 나온다. 또 록 음악의 비트는 성적 흥분을 유발시키는 비트이다. 이러한 비트들은 기존 질서와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항, 옳은 것에 대한 거부, 긴장감과 압박감, 퇴폐, 음란, 성적 욕망 등을 일으킨다. 과연 록 음악의 내용은 성적 음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 술취함, 난폭, 폭력, 파괴, 마약, 환각, 동성애, 무질서, 허무, 자살, 사탄 숭배 등이다. 록 음악에는 규칙, 도덕, 법, 철학, 진리가 없다고 지적된다. 특히 사탄 숭배에 관하여 70년대는 역행 은폐(backward masking)의 방법을 사용했으나, 80년대는 보다 노골적이다. 예를 들어, 블랙 오크 알캔자스, 앨범 '라이브 론친롤,' '알캔자스에 전기가 들어왔을 때'--"사탄, 사탄, 사탄, 그는 신이다. 그는 신이다. 그는 신이다." 그룹 AC/DC, '처음 느낀 사랑의 감정'--"우리는 악마를 섬긴다. 즐겨라, 죄인들이여." ("내곁에 도사린 사탄의 두 얼굴," 크리스천 한국, 1993년 8월 25일, 1, 2쪽.) 1950년대 초에 처음 등장한 이후, 록 음악은 청소년 층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며 인기가 있지만,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영역에서 가장 무서운 악영향을 주고 있다. 록 음악은 거칠고 난폭하며 혼란한 소리이며 저속하고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최면 효과를 일으켜 사람을 열광에 빠지게 하고 청각에 손상을 주며 예술적 가치는 전혀 없다. 세속적 록 음악의 영향을 받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현대 기독교 음악의 대다수는 크리스챤 록 음악이다. 그것은 리듬이나 화성이 세속적 록 음악과 비슷하다. 곡의 작곡 형식이 전통적이지 않고 세속적 록 음악과 같다. 그것은 전통적 클라식 음악이 가지는 질서와 안정과 아름다움을 중시하지 않는다. 리듬에 있어서 그것은 약약강격을 많이 사용하고, 화성에 있어서 그것은 "도미솔, 도화라, 시레솔"의 정상적 3화음을 좋아하지 않고 불협화음들을 자유로이 사용하므로 육감적, 세속적 기분이 든다. 가사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곡에 있어서 그것은 세속 음악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O. T. 스펜스 박사는 "가스펠 록(gospel rock)은 육신적 음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였고, 복음송에 대하여도 "가스펠 록이 거의 모든 복음송에 들어가 있다. 이 노래들은 경험, 느낌, 감상적(感傷的)인데 근거하고, 대부분 은사주의자들이 만든다"고 논평했다(1993년 10월 24일, 잠실동교회 주일낮설교). 또 그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에 젖으면 몇 년 후에 세속적 록 음악으로 간다"고 말하였다. 록 음악에 오랫 동안 몸담았던 리차드 펙은 우리가 부드러운 록 음악(soft rock)이라도 배격해야 하는 까닭은, ① 부드러운 록 음악도 메시지가 항상 부드러운 것이 아니며, ② 연주자가 그것을 흔히 온건하게만 연주하지 않으며, ③ 그것은 여하튼 록 음악의 맛을 들게 만드며, ④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기 위해 결국 록 음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ichard Peck, Rock: Making Musical Choices). 덧붙여, 오늘날 현대 기독교 음악에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보다 사람이 높임을 받는 경향도 없지 않다. 또 실제로 크리스챤 록 콘서트에 돈을 받음으로써 상업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날 크리스챤 록 음반 사업은 큰 사업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 혹은 크리스챤 록이나 그런 류의 복음송들을 경계해야 한다. 쏟아져 나오는 복음송들의 곡들과 가사들을 검토, 평가하고 우리 교회들의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건전한 것들을 정선하는 것은 오늘날 보수적 교회들의 큰 과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복음송들을 무분별하게 아무 것이나 부르지 않고 좋은 것들을 부를 수 있도록 지도해주어야 한다. 물론 록 스타일의 곡이나, 비성경적이거나 별 의미가 없는 가사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청년들에게 옛날부터 즐겨불렀던 찬송가들을 부르도록 권면해야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의 찬송이나 영적 노래들(엡 5:19)은 가사와 곡에 있어서 건전해야 한다. 그 가사는 성경 교리에 합하고, 복음의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하고, 그 곡도 경건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빈번한 불협화음들을 피하고, 단조(短調)도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아야 해야 한다. 소리를 너무 크게 하거나 속도를 너무 빠르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도들의 음악과 노래는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것이므로 결코 자기만족적이거나 자기도취적이어서는 안된다.
분석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남녀 평등주의 사상이 많이 들어와 있고 이것은 특히 여성 목사와 여성 장로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예들은 많지만, 최근의 몇 가지 예들을 들어본다. 커버넌트 신학교의 제람바즈 교수의 남녀평등주의 1997년 라브리 청년대학생 수양회의 '세상 속의 일그러진 성'이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변증학 교수이며 프란시스 쉐퍼 연구소 소장인 제람바즈 교수는,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에 관하여 구분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경말씀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의미가 아니고 동등한 위치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녀는 동등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1월 19일, 15쪽.) 미국의 여자 목사들의 증가 미국 뉴스와 세계 소식(U. S. News & World Report) 1998년 8월 10일자는 "하와에 의한 성경"이라는 특별 기사에서 "여성들은 약 80개의 기독교단들에서 목사직에 그리고 보수파와 개혁파와 재건파 유대교에서 랍비직에 용납된다. 여성들은 신학교 프로그램들 안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3분의 1에 이른다"고 했다(Calvary Contender, 1998년 9월 1일). 미국 연방 노동청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자신을 '성직자'라고 묘사하는 여성들의 숫자는 1983년과 1996년 사이에 27,134명 증가하였다. 1983년에는 그 숫자가 16,408명이었으나, 1996년까지 여성 '성직자'의 숫자는 43,542명으로 늘었다. 이것은 여성들이 미국의 모든 성직자들의 12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David Cloud, "Number of Ordained Women Grows Phenomenal- ly," in Christian News, August 10, 1998, p. 26). 1997년에, 229개의 북미 신학 대학원 학생들의 30퍼센트는 여성이었는데, 그것은 1972년의 10퍼센트와 비교할 때 크게 증가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개신교 감독교회 신학교와 디스트릭에 있는 연합 감리교회의 웨슬리 신학교는 학생들의 절반이 여성이다(Ibid.).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의 여성 안수 가결 1994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 안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예장 통합측은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와 더불어 한국에서 자유주의적 교회들의 노선을 다시 한 번 더 드러내었다. 비평 오늘날 점차 많아지고 있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에 대한 주장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세속사회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런 생각이 복음주의적 신학교 안에서 가르쳐지고 기독대학생들과 청년들에게 퍼진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현상이다. 여성 안수을 주장하는 자들의 근거는 대개 다음과 같다. (1)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여성 사역자들이 있었다는 점(예를 들어, 여선지자 드보라, 미리암, 전도자 빌립의 딸들, 브리스길라, 뵈뵈 등), (2)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갈라디아서 3:28의 말씀은 남녀 평등의 원리를 가르친다는 점, (3) 세속 사회도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데 하물며 교회가 시대 조류를 역행할 수 있는가라는 주장, (4) 교회 내의 여성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위의 반론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러한 생각들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믿고 행동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상 변칙적으로 허용하신 것과 교회의 정식적 규범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밝히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성경을 믿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왔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인간적, 시대적 생각을 버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의 창조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을 지으셨다(창 2:18). 이 기사가 분명히 보이는 바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남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여자를 만드셨다는 점이다. 여기에 남녀의 역할의 구분이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는 역할, 돕는 역할을 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학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둘은 한 몸이요 참된 사랑의 관계이다. 남편은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한 편이 다른 편을 위하는 관계이고 순종하는 관계인 것이다. 신약성경은 결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7은 여자 목사직과 여자 장로직을 금하는 다섯 가지의 이유들을 밝히 제시하였다. 디모데전서 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이 구절은 여자의 가르치는 일(목사직)과 다스리는 일(장로직)을 명백히 금하고 있다. 이렇게 금하는 이유들은 두 가지이다: ① 창조의 질서 때문이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자는 남자의 협조자(helper)로 창조되었다. ② 여자의 범죄에 대한 징벌 때문이다. 인류의 타락시 아담은 여자가 선악과를 줌으로 그것을 먹고 범죄하였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러므로 이제 여자는 또다시 나서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제약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 두 이유들은 다 어떤 시대적, 환경적 요인들이 아니고, 역사적, 불변적 사실들이다. 고린도전서 14:34-37,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너희의 아내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여기에서도 여자들이 교회 앞에 나서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고 있다. 그 이유들은 ① 율법의 말씀이기 때문이다(34절, "율법에 이른 바와 같이"). 어떤 율법을 가르치는가? 예를 들면, 창세기 2:18,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세기 3: 16,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기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② 주의 명령이기 때문이다(37절, "주의 명령인줄 알라"). 에베소서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베드로전서 3:1, 5-6,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 .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사도들(바울과 베드로 등)의 교훈은 곧 주의 교훈이다. ③ 교회의 보편적 규율이기 때문이다(34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위의 두 구절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교훈을 옛 시대의 사고방식과 풍습에 제약을 받은 사도의 인간적 말로 보는 것은, 거기에 제시된 다섯 가지의 이유들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항하는 큰 오류요 죄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박형룡 박사는 이것이 2천년전의 한 지방 교회의 풍습이 아니고 만고 불변의 진리라고 밝히 강조했다(145-148쪽).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신학자들이 인용하는 다음 성경 구절들은 위의 성경 진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1: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구절들은 직분에 있어서의 남녀 평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은혜와 구원의 복을 받음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뜻이다. 신약의 만인 제사장 진리도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녀 역할의 차등의 진리와 배치되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신약시대의 복음 사역에 여자들의 역할이 컸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누가복음 8:2, 3,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직이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예수님과 12제자들)를 섬기더라." 로마서 16장에는 뵈뵈, 브리스길라, 마리아 등 복음을 위해 많이 수고한 여자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 뿐 아니라, 여자에게는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특별한 사역이 있다. 디모데전서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절은 여자가 해산을 통해 그의 낮은 지위가 회복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훌륭한 남자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분석 오늘날 낙태는 대단히 큰 사회 악이다. 또한 이것은 성적 부도덕과 맞물려 유행하는 악이다. 낙태로 죽어가는 어린 생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한 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 1980년 합법적으로 행해진 낙태는 150만명이었고 그 중 79%는 미혼자들에 의한 것이고 30%는 청소년들에 의한 것이며 심지어 1%는 15세 이하의 경우이었다. 미국 남북전쟁시 사망한 군인들의 수는 약 50만명명이었고, 1차 세계대전시 사망자수는 약 12만명, 2차 세계대전시 사망자수는 약 41만명, 한국의 6·25 전쟁시 사망자수는 약 5만명, 베드남 전쟁시 사망자수는 약 6만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낙태가 합법화 된 1973년 이후 1985년까지 미국에서 낙태된 어린 아기들의 수는 약 1500만명이라고 하니 심히 두려운 일이다(Haven B. Gow, "Is Abortion in America Like the Holocaust?," Christian News, 1985년 6월 24일, 8쪽). 그런데 현대 교회들이 낙태를 요납하고 있다. 지금부터 25년전 미국의 역사적 로(Roe) 대 웨이드(Wade) 대법원 판결 이전, 이미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낙태가 더 이상 범죄가 아니며 여성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함께 일부 목사와 성도들은 낙태 여성을 위해 체포까지도 감수했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1972년 총회에서 발표된 사회신조를 통해 낙태를 범죄 목록에서 제거하고, 그 대신 기초적 의료 행위 과정과 연관되는 법률로 다루어야 한다며 낙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1972년 통과된 책임 있는 부모에 대한 결의는 1968년 총회 때 확정된 결의로부터의 아주 중요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1968년 결의는, 사랑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아이들이 계속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경고하면서 낙태를 찬성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에 대한 단순한 논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강간이나 근친상간, 그리고 다른 극도로 나쁜 환경의 경우 의사들에 의해 승인된 낙태만을 찬성했다. 그러나 1972년 결의는 낙태에 대한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와 관련, 여성들이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하는 것으로 더욱 진보했다. (크리스챤 신문, 1998년 2월 2일.) 1986년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는 낙태에 관하여 281대 266으로 '각자의 자유 의사에 맡긴다'(pro-choice)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Religious News Service, June 18, 1986).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의 공식적 진술들도 낙태를 지지한다(Calvary Contender, 1999년 1월 1일). 비평 낙태는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범하는 죄이다. 출산 이전의 태아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따라서 낙태는 용납될 수 없다. 낙태가 살인이라는 성경의 원리는 출애굽기 21:22-25에 나타나 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 . 갚을지니라." '낙태케 하였다'는 원어(웨야츠우 엘라데하)는 직역하면 '그의 아이가 나온다'이다(옛날 영어성경은 그렇게 번역함). 이것은 단순히 조산(早産)을 가리키며, 반드시 낙태 혹은 유산(流産)을 의미하지 않는다. 낙태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솨칼 혹은 네펠이다. '다른 해가 없으면'이라는 말은 엄마에게나 아기에게나 다 적용된다(칼빈과 카일-델리취도 그렇게 생각함). 이 말씀은, 만일 조산된 아기가 죽었으면 살인죄가 적용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태아의 생명체도 인간생명으로 간주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낙태는 죄라는 것이 분명히 증거된다. 모태에서의 생명이 인간 생명으로 간주되는 것은 예레미야 1:5과 누가복음 1:41에서도 증거된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야차)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태 안에서 뛰노는지라." 태 안에 있는 생명체는 비인간적 존재가 아니고, '아이'이다. 의학적으로도, 인간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 시작된다. 임신 3주째면 벌써 심장 근육이 움직이고 머리, 팔, 다리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40일에서 42일이면 뇌파가 감지되고, 2개월이면 코, 눈, 귀, 발가락이 나타나며, 심장이 뛰며 혈액이 흐르고 뼈가 형성되고 모든 육체 기관들이 존재하며 활동한다고 한다. 3개월이면 곁눈질하고 주먹을 쥐고 혀를 움직이며 손가락을 빨 수 있고 육체적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4개월이면 몸무게는 6배로 늘어나 출산시 몸무게의 약 2분의 1이 되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5개월이면 피부, 머리털, 손톱이 생기고 꿈을 꿀 수 있고 공기가 존재한다면 울 수 있고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노만 가이슬러, 기독교윤리학, 190, 191쪽). 유전학적으로도, 수정란은 인간이다.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는 각각 23개씩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임신이 된 수정란은 46개의 염색체를 가진다. 이것은 정상적 성인의 염색체 수와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그리고 의학적으로 낙태 혹은 인공유산은 허용될 수 없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의 경우도 태아 살해를 정당화 할 수 없다. 낙태를 위한 불가피한 경우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심지어 모체가 태아로 인하여 생명의 심각한 위험을 받을 경우에도 그것은 정당한 일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시작된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의사에게도 엄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없다. 낙태는 살인이다.
분석 동성애(同性愛)는 동성간의 성행위를 말한다. 옛날부터 동성애의 죄악이 있어왔지만, 오늘날 특히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용납해야 한다는 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그런데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들 안에서도 동성애를 용납하려는 움직임이 널리 일어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1993년 11월, 세계의 300개 교단 이상을 대표하는 세계교회협의회는 2,000명의 여성들이 참석한,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의 리-이메이징(Re-imaging) 대회를 후원하였다. 그 대회의 연사들 중 다수는 여성 동성애를 조장하였고, 대략 100명의 여성 동성애자들 무리는 그들의 동성애를 자축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갔고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한 분과토론회는 '교회 내에서의 여성 동성애자들의 예언적 목소리'라는 이름을 가졌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미국 교회 협의회(NCC) 미국의 대표적 동성애 교회인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 세계협회의 지도자 그윈 깃보드(Gwynne Guidbord) 박사는 최근의 미국 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연사로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회집된 교회협의회 대표들 중 최소한 절반은 서서 그 여자에게 갈채를 보내었다(National Liberty Journal, 1999년 2월호). 그 여자는 실제로 동성애에 대한 반대가 젊은이들을 매춘, 마약, 알코홀 남용에 빠지도록 강요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교회협의회 회장 크레익 앤더슨을 포함하여 일부 교회협의회 지도자들은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 세계협회를 회원 교단으로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2월 15일.)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1993년 11월, 2,000명의 여성들이 참석한,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의 리-이메이징(Re-imaging) 대회의 연사들 중 다수는 여성 동성애를 조장하였고, 대략 100명의 여성 동성애자들 무리는 그들의 동성애를 자축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갔고 기립 박수를 받았다. 미합중국 장로교회에서 스스로 동성애 여목회자로 공언한 재인 스파(Jane Spahr)는 주장하기를, 그의 신학은 무엇보다도 그의 동성애 파트너인 "코니(Coni)와 사랑을 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고 했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7년 수년간의 논쟁 끝에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는 모든 미혼 목사들, 집사들, 장로들이 독신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성적으로 순결치 못한 모든 독신 직분자들을 당황케 할 것이지만, 특히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Calvary Contender, 1997년 5월 1일.) 1999년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동성애 전도자 제인 스파(Jane Spahr)를 올 해의 '신앙의 여성' 수상자로 지명하였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이 이혼모는 미합중국 장로교회를 섬기는 첫번째 공공연한 동성애자이었다(Calvary Contender, 1992년 4월 1일). 그는 동성연애 장로교인들의 교회 직분자로서의 임명을 위해 바쳐진 한 단체를 섬겼다(World, 1999년 5월 15일). 상을 받을 다른 두 여자는 예일대학 교수 동성연애자 레티 럿셀과, 은퇴한 한 프린스턴대학 교수이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7월 1일.) 1999년 미합중국 장로교회 211차 총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안수금지를 규정한 '정절과 순결' 헌법조항 삭제를 주장하는 교회직제 목회위원회의 '다수파' 보고서 대신, 동성애자에 대한 목사 장로 집사 안수 여부를 놓고 2년간 연구와 토론을 하자는 '소수파' 보고서를 지지했다. 다수파 지지 총대는 총대 198명(38퍼센트)이었고 소수파 지지 총대는 총대 319명(61퍼센트)이었다고 한다. (기독신문, 1999년 6월 30일, 16쪽.) 1966년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가 채택한 '정절과 순결'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회의 직원의 소임을 받은 자는 성경에 복종하고 교회의 역사적 신앙 표준에 적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표준들에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결혼의 서약을 맺은 관계에서 정절을 지키며 살거나, 또는 독신 생활에서 순결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요구조건도 포함된다. 신앙고백이 죄라 한 것을 범한 것을 자인하고도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안수할 수 없으며 또한 집사나 장로나 성직자로 세울 수 없다" (Book of Order, G-6.0106b). 성경이 명백히 정죄하는 동성애의 문제를 두고 동성애자들을 안수할 수 없다는 교회의 규정을 삭제하기를 원하는 총대들(즉 많은 목사들의 대표자들)이 198명이나 되고, 나머지 총대들도 그 조항을 강하게 지키려는 것보다 그 문제를 '2년간 연구, 토론하자'는 입장일 뿐이니, 도대체 교회가 얼마나 부패한 것인가! 1995년 통계에 의하면,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11,361교회, 세례교인 266만명의 대교단이다.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 상설재판국은 2000년 5월 노스이스트 대회 상설재판국의 판결에 불복해 올라온 두 건의 상소 사건을 다루면서 목사의 동성애자 '결합식'(union) 주례를 인정하며 동성애자 목사후보생을 인정하는 대회 상설재판국의 판결을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상설재판국은 1997년에 채택한 "교회 직원은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결혼생활에서 성실해야 하며 독신생활에서 순결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수정조항(B)'은 교회 예식이나 목사후보생 자격심사의 기준으로 확대 적용될 수 없다고 해석하며, 동성간의 '결합식'이 이성간의 전통적 결혼식과 혼동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치러진다면 목사가 그 의식을 주례하는 것은 헌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동성간의 결합식은 전통적 결혼예식의 의미와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한 상설재판국은 현재 자신이 독신 동성애자이며 가까운 장래에 실제로 동성애 관계를 가질 것이라고 밝힌 사람을 합법적으로 목사후보생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기독신문, 2000년 5월 31일, 8쪽.) 2000년 6월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는 동성애 금지 조항을 명시한 헌법수정안을 전체 회의에서 한 시간의 격론 끝에 268대 251의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 수정안은 총회 산하 173개 노회의 3분지 2의 찬성을 얻어야 효력을 가진다. (기독신문, 2000년 7월 5일, 8쪽.) 그러나 이 결정은 기뻐하기보다는 여전히 슬픈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 시간의 격론 끝에 268대 251로' 통과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1979년도의 한 책에서, (연합감리교회 소속) 남부 감리교 대학교의 빅터 폴 퍼니쉬(Victor Paul Furnish)는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정말 동성애를 정죄했는지 의문(疑問)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82년, 연합감리교회에서 출판된 '인간의 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동성애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 목회나 지도적 직분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고 진술하였다. 그 보고서는 주장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동성애적이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완전한 그리스도인 제자의 생활을 하고 상호간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5년 11월, 워싱턴 D.C.에 있는 연합감리교단 소속 파운드리 감리교회에서 열린 한 공개토론회에서 연사들은 바울을 '자신을 미워하는 동성애자'로 묘사했고, 동성애 결혼을 칭찬했고, 또 다윗 왕이 양성애자이었을지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가 동성애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다. 그 대회에서는 동성애적 무지개 상징을 보이는 깃발을 앞세운 '성직자 행렬'이 있었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7년 9월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제일 연합감리교회의 지미 크리치(Jimmy Creech) 목사는 그의 교인 중 두 명의 여자 동성연애자들을 위해 결혼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그 교회의 한 교인의 고소로 그 사건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런데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연합 감리교인들의 비공식적 대표 모임인 '단언'(Affirmation)이라는 모임은 그 교단의 최고 법정인 재판위원회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식에 대한 1996년 교회 금지 규정의 합헌성 여부를 판단해주기를 원한다. '단언'의 대변인인 진 네퍼는 말하기를, 1996년 채택된 그 금지 규정이 "불분명하고, 비헌법적이고 강요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불공정하며 교회의 어떤 회원들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봉사를 부정한다"고 했다. (Christian News, 1997년 11월 24일, 11쪽.) 1998년 1월, 미국 연합감리교회 소속 목회자들 일부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6개항으로 된 이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성경, 전통, 이성 및 경험에 의지하여 '동성애라는 관행' 그 자체가 기독교의 교훈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또한 그들은 동성 커플 계약의 약속을 위해 예전적(예를 들어, 결혼 예식 거행 등) 도움을 적절히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안수 받을 자격이 충분한 남녀 동성애자들에게 안수가 주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자들 가운데는 남감리대 빅터 폴 휘니쉬 교수, 사회행동을 위한 감리교 연합 총무 조지 맥클레인 등이 있다. (크리스챤신문, 1998년 1월 26, 2쪽.) 1998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재판국은 동성애 결혼식을 집례한 일로 고소된 지미 크리치 목사의 재판에서 13명 배심원 중 8명은 크리치 목사의 유죄를 인정했으나 최소한 9명이 유죄를 인정해야 유죄평결을 내릴 수 있는 교회법에 따라 크리치 목사의 장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 크리치 목사의 무죄평결 이후 연합감리교회 내의 갈등과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연합감리교내 복음주의 단체인 '좋은 소식'과 '신앙고백운동'은 3월 17일에, 그리고 노스캘로라이나 연회 감독과 12명의 감리사들은 3월 24일에 각각 이번 평결을 재심의하고 동성애 결혼집례를 금지하는 확실한 법규를 마련하기 위한 비상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휴스턴 제일감리교회 빌 힌슨 목사는 3월 15일 비상총회 소집의 필요성을 감독들에게 촉구했다. 애워스 감리교회는 3월 15일, 그리고 마운트 베델 감리교회는 3월 29일, 크리치 평결로 야기된 장정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기 전까지 총회 분담금을 보류하기를 결정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네바다 연회 소속 '복음주의' 성직자 18명과 평신도 25명은 4월 2일 '자유주의' 연회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갤리포니아-네바다 연회 감독과 직전 감독은 교단내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성명서에 서명했었으며, 이 연회 소속 지방회 감리사 2명은 크리치의 동성애 결혼식 집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었었다. 한편, 크리치 목사를 지지하는 '비전을 선포하는 모임'이라는 단체의 목회자 92명은 동성애자 결혼식 집례를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또 '화해하는 교회'라는 단체는 3월 16일 '지미 크리치 목사 재판의 평결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기독신문, 1998년 4월 15일, 16쪽.) 1998년 7월, 미국의 감리교회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더 이상 [연합감리교회]의 회원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월드(World)지 1998년 7월 25일자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신자들은 신앙의 기본적 사실들을 긍정하지 않는 자들과 영적 동반자들일 수 없다," "우리는 본교단에서 연합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분열에 대한 존 웨슬리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되어 있다: "불경건과 배교가 우세한 교회들 안에서, 분열의 악은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에게 있다." 최근의 논쟁의 많은 부분은 연합감리교회의 목사 지미 크리치의 최근의 두 여성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언약' 결합 의식의 집례와, 미국 뉴욕시의 악명 높은 리버사이드 교회의 '동성애자 주일' 예배에서의 그의 '설교' 때문에 기인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라이드 기념 연합감리교회의 목사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는 자기의 정박소는 '해방의 신학'이며 "규칙들과 교리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30년 이상 동안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결합 언약 의식을 집행해 왔다고 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1998년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최고 법정에 의한 한 구속력 있는 판결은 동성(同性)의 결합들이 연합감리교회 목사들에 의해 연합감리교회들 안에서 행해질 수 없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한 보수적인 연합감리교회 지도자는 말하기를, 1998년초 240명의 연합감리교회 목사들이 그들이 요청을 받는다면 동성의 결합들을 집례하겠다고 말하는 성명서들에 서명하였다고 한다(Christianity Today, 1998년 10월 5일). 월드(World)지 1998년 9월 19일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합감리교회 소속 글라이드 교회의 목사 시실 윌리암스와 기타 성직자들이 동성의 결합들을 즐거이 집례하겠다고 진술하는 성명서에 서명하였다고 말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10월 15일). 1999년 1월 16일, 한 여성 동성애 부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1500명의 사람들 앞에서 95명의 연합감리교단 목사들에 의해서 '축복'을 받았다(Christianity Today, 1999년 3월 1일). 그들은 그 의식을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동성애자들의 결합에 대한 그들 교단의 금지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3월 15일.)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 1972년,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윌리암 존슨(William Johnson)의 안수를 허락했는데, 그는 대교단에 의해 안수받은 첫번째의 공공연한 동성애자이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80년,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현행 남녀 동성애자들이 목사로 봉직하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대교단이 되었다(Christian News, 1992년 4월 13일). 1985년,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 총회(2년마다 모임)는 동성애자들을 목사로 허락하는 것을 압도적 표수로 결정했다(Christian News, 1985년 4월 29일, 3쪽). 1994년,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 총회장 폴 쉐리(Paul Sherry)와 지도자들은 '남녀 동성연애자들과 양성애(兩性愛, Bisexual)자들의 동등권과 해방을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가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8년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 총회장 폴 쉐리는 동성애의 용납을 지지하면서 쓴 자신의 목회 서신이 6천개의 모든 연합그리스도 교회의 강단들에서 읽혀지기를 원하였다(World, 1998년 12월 5일). 1995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6,145교회, 147만 교인을 가진 대교단이다. 미국 감독교회(ECA) 1987년, 미국 감독교회의 뉴저지주 뉴워크시 감독 교구는 동성애적 결혼들의 인정을 요청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87년 11월, 미국 감독교회의 매사추세츠 감독 교구의 '성직자' 대표들은 결혼식과 비슷한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축복 의식을 개발하기로 한 결의안을 승인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88년, 미국 감독교회의 감독 죤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은 죄 가운데 삶: 한 감독이 인간의 성(性)을 다시 생각함(Living in Sin: A Bishop Rethinks Human Sexuality)이라는 책에서 '나는 남여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에 대한 교회의 축복은 불가피하고 옳으며 분명한 선(善)이라고 간주한다'고 썼다(198쪽)(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3년 국내 및 국제 종교 보도(NIRR)에 의한 설문조사는, 미국의 감독교인들의 75퍼센트는 성적으로 활동적인 동성애자들이 여전히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Christ- 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7년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감독교회의 3년마다 열리는 총대회 기간에, 동성애에 관하여 심각히 분열되어 있는 감독교인들은 남녀 동성애자들에게 "여러 해 동안 교회가 [그들을] 거절하고 박대한 것에 대하여" 사죄하였다. 또한 그들은 동성(同性) 결합들의 축복을 연구하고, 가사의 일에 관여하는 배우자들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확장하기로 가결했고, 성적으로 활동적인 동성애 성직자를 금지하려는 시도들을 부결시켰고, 동성애 관심사에 동정적인, 자유주의적인 새 감독 회장을 선출하였다. 미국 감독교회에는 7명의 여성 감독들과 약 1,500명의 여성 신부들이 있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Calvary Contender, 1997년 9월 15일). 1998년, 미국 감독교회의 감독회장인 에드먼드 브라우닝(Edmond Browning)은, 감독회장으로서의 그의 마지막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 국교회 [전통을 받은] 교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과 전통과 이성을 통하여 분별한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우리의 영국 국교회 전통 대신에 성경 문자주의를 받아들이기를 택하였다. 역사는, 성경 문자주의가 노예제도의 실천 뿐만 아니라 또한 여성의 인격 훼손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었음을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노예제도를 지나서 움직여 왔고 여성 압박을 지나서 움직이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남녀 동성애적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한 선입견들을 창조하는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의 사용을 지나서 움직일 때이다"(Evangelicals Concerned, 1998년 봄호). 새 감독회장인 프랭크 그리스월드(Frank Griswold)는 "오래 전부터 남녀 동성연애자들의 교회 생활에서의 완전한 참여에 대한 지지자이었다"고 한다(Calvary Contender, 1998년 5월 1일). 미국 감독교회의 자유주의자 죤 쉘비 스퐁 감독은 동성애자들을 안수하는 것을 찬성하고, 바울이 "심히 억제된, 자기 부정적 동성애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다(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1999년 2월 12일 미국 감독교회의 올림피아 교구의 세인트 마크 대성당에서는 공공연한 동성애자 로버트 테일러 주교를 수석주교로 임명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 의식에는 200명에 달하는 교구 대표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수백 명의 성직자,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투투 대주교도 참석했다. (기독신문, 2000년 3월 15일, 8쪽.) 미국 감독교회는 1995년에 7,415교회와 세례교인 158만을 가진 대교단이다. 미국 침례교회(ABC) 1993년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의 리-이메이징(Re-imaging) 대회에서의 연사들 중 다수는 여성 동성애를 조장하였는데, 미국 침례교회에 부름을 받은 첫번째 '드러난' 여성 동성애 목사인 내디안 비숍(Nadean Bishop)은 성경에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여성 동성애자이었다고 주장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9년 미국 침례교회 대회는 캘리포니아주의 4개의 교회들을 친(親)동성애적 경향 때문에 제명출교하기로 한 결정으로 야기된 심각한 내적 분열을 드러낸 가운데 마쳤다고 한다(Christian News, 1999년 7월 5일;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일). 그러나 1999년 현재 미국 침례교회에는, 동성애자들의 참여를 격려하는 지도자 모임인 '환영하고 찬성하는 침례교인들 협회'에 소속하는 37개의 교회들이 있다고 한다(Huntsville Times, 1999년 7월 22일). 또한 최근에 제명된 네 교회 중의 하나의 목사인 에스더 하기스(Esther Hargis) 목사는 여러 항의들 때문에 그 제명들이 집행 유예를 향한 단계로 동결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5일.)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소속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소망 루터교회의 톰 브록(Tom Brock) 목사는 뉴올리안스에서 열렸던 교단의 여름 청년집회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교단 총회에 대하여 슬픔과 탄식의 심정을 가지고 몇 가지 사실을 증거하였다. 첫째로, 교단 청년집회에서는 '관심 있는 루터교인들'이라는 동성애를 조장하는 단체의 책상이 있었다. 교단 총회에서는 '정의의 벽'이라는 방에 그들을 위한 전시물이 있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교회 집회에 보내서 실제적 동성애자들에 의해 선전을 듣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그는 질문했다. 둘째로, 교단 총회에서, 연합그리스도의 교회 대표는 '성령'께서 그 교단을 인도하셔서 실제적 동성애자들에게 안수를 주었다고 진술한 후 우리 루터교인들도 그들의 순례 과정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Christian News, 1997년 11월 10일, 1, 7쪽.)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The Disciples of Christ) 1993년,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 총회는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목사를 대표자로 선출했다(Calvary Contender, 1993년 8월 15일). 카나다 연합교회(UCC) 1988년, 카나다 연합교회는 카나다에서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를 합법화한 최초의 교단이 되었다. 그 이후, '남녀 동성연애자들'을 교회 생활의 모든 방면에 환영하는 연합교회들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2년 5월, 카나다 연합교회의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회는 공공연한 동성연애자인 팀 스티븐슨(Tim Stevenson)을 목사로 안수하였고, "그리스도인의 상호간의 위탁의 진정한 표현들로서 동성간의 언약들의 타당성을 선언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종교 뉴스 통신(RNS)은 카나다 연합교회의 어떤 목사들은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을 위한 '언약' 의식들을 집행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1992년, 카나다 연합교회의 마니토바와 노스웨스턴 온타리오 대회는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을 교회들 내에서 결혼시키는 것을 허락하도록 표결하였다. 또한 사스카치완 대회도 앞으로 삼년 동안 적어도 10개의 강단을 동성연애자들에게 개방하기로 표결하였다. (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영국교회(성공회) 1998년 8월, 램버스 회의에 참석한 전세계의 성공회 주교 대표들은 '동성애는 비성경적'이라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526 대 7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하였다. 아프리카 출신 주교들이 발의한 이 결의안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맺어진 결혼관계 외의 성생활을 성경은 금지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는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없으며, 동성애 결합을 결혼으로서 축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독신문, 1998년 8월 12일, 16쪽.) 아직도 보수적 주교들이 다수라는 사실은 감사하지만, 70명의 가증한 지도자들이 포용되어 있다! 영국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 1997년 7월, 영국의 연합개혁교회는 '실제적인 동성애자들'을, 그들을 뽑기로 결정하는 교회들의 목사로 받아들이기로 동의하였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호주 연합교회(Uniting Church in South Australia) 1996년, 남 호주 연합교단의 대회는 동성애자들을 지도적 직위들에 임명하는 것에 대한 연기 제안을 부결시켰다(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미국 메트로폴리탄 공동체교회(UFMCC) 1968년, 메트로폴리탄 공동체교회 세계협회라고 불리우는 한 교단이 활동적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오늘날 그 교단은 330교회들에 30,000명 이상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997년 2월, 주로 동성연애자들로 구성된 앞에 언급한 메트로폴리탄 공동체교회 세계협회는 남캘리포니아 에큐메니칼 협의회에 가입되었다. (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미국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회(UUC) 1980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회는 공공연히 동성애적이고 양성애적인 인물들을 지도적 지위들에 채용하기로 결의했다. 1984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단(UUF)은 동성연애자들 간의 결혼을 인정한 최초의 주요 교단이 되었다. 1996년 7월, 유니테리안 및 보편구원 회중협회(UUAC)는 동성 결혼의 합법적 인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 (Christian News, 1997년 10월 27일, 5쪽.)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기념교회의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Peter Gomes)는 말하기를, 그 교회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Huntsville Times, 1997년 7월 17일; Calvary Contender, 1997년 8월 1일). 또한 1997년 10월 3일 유에스에이 위크엔드(USA Weekend)와의 대담에서 고움즈는 레위기에서의 동성애의 금지가 동성연애자가 "본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그것을 행하였고 그러므로 그것이 의식적(儀式的)으로 불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로마서 1:27에서 동성애 행위에 대한 바울의 비평이 "본성적으로" 동성애자인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이성애자들에 의한 동성애 행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바울이 동성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모두 그것의 타락한 이방적 표현이었다. 그는 그런 무지 때문에 정죄될 수 없지만, 그의 무지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위한 변명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Christian News, 1997년 11월 10일, 7쪽.) 하버드 대학교의 비교 종교 및 인디안학 교수 다이아나 에크(Diana Eck)는 1998년 7월 그의 동료 교수이며 20년간 그의 동성애 파트너인 도로시 어스틴(Dorothy Austin)과 함께 하버드 대학교의 로웰 기숙사의 사감으로서의 임무를 맡았다(Huntsville Times, 1998년 4월 26일). 에크는 1988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이방 종교들과의 대화 위원장이었다(Christian Beacon, 1988년 12월 1일). (Calvary Contender, 1998년 6월 1일.) 투투 대주교(Desmond Tutu)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실제의 동성애자들의 안수를 요청한 최고위급 성공회 교인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인 투투 대주교는 동성애자들을 거절하는 것이 "거의 기본적인 신성모독"이라고 표현하였다(Calvary Contender, 1996년 6월 1일). 그는 또 말하기를, 세계교회협의회가 계속 신뢰할 만한 단체가 되기 원한다면, 짐바브웨 총회에서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하였다(Christian News, 1998년 3월 2일). 그러나 투투 대주교는 1995년 6월 미국 침례교회(ABC) 모임의 연사이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4월 1일.) 복음주의자들 랄프 블레어(Ralph Blair)의 '관심 있는 복음주의자들' 랄프 블레어가 인도하는 친(親)동성애적인 '관심 있는 복음주의자들'이라는 단체는 연례 여름수련회들을 가진다. 그 단체의 레코드(Record)지 1998년도 봄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0년 이후, 국내의 전역에서 온 남녀 동성애자들은 . . . 교제를 나누고 복음주의적 제자 훈련을 심화시키기 위해 모였다. 여러 해에 걸쳐서 우리의 주요 강사들은 로잘린드 링커 . . . 페기 캠폴로, 낸시 할디스티, 레다 스캔조니, 버지니아 몰렌코트, 루이스 스미즈, 멜 와이트, 켄 미드마 등 기타 복음주의자들을 포함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루이스 스미즈(Lewis Smedes) 풀러신학교 윤리학 은퇴교수 루이스 스미즈는 친(親)동성애 단체 '관심있는 복음주의자들'의 '컨넥션 95' 대회의 특별강사이었고, 또 1999년 7월 대회의 강사인데, 그와 여자 동성애자 작가 케이시 올슨과 그 단체의 랄프 블레어가 주강사들이다. 스미즈는 동성애자들을 옹호했고 결혼전 누드 페팅이 "서로간의 발견을 위한 섬세하게 조율된 수단"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간, 근친상간, 및 모체의 안녕 외의 다른 요인들이 낙태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의 글들 중 어떤 곳에서 신정통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말을 긍정적으로 인용한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무디 먼스리 1987년 4월호는 스미즈의 책을 칭찬했다. (Calvary Contender, 1986년 1월 15일; 9월 15일.) 루이스 스미즈는 말하기를,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상태 때문에 죄책의 짐을 받아들이기를 단순히 거절해야 한다. 그는 생물학적 사고이거나 다른 어떤 이의 잘못이거나 둘 중의 하나의 희생물이다"라고 한다(Calvary Contender, 1995년 6월 1일). 이것은 신성모독적인 말이다. 토마스 행크스(Thomas Hanks) 1992년 11월, 라틴 아메리카 선교회[LAM}의 저자인 토마스 행크스는 복음주의 신학회 연례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동성애에 관한 그들의 부정적 사고를 수정하라는 도전적 강연을 했다(Calvary Contender, 1993년 7월 1일). 행크스는 복음주의 신학회 1997년 11월 모임에서도 강연했고 최근에는 풀러신학교에서 열린 동성애에 관한 패널토론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행크스는 "공공연한 남성 동성애자이며 복음주의적 성경 교사요 [LAM과 관련된] 라틴 아메리카 선교사이며 남녀 동성애자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국제적 후원사역인 '다른 양들'(Other Sheep)이라는 단체의 설립자"라고 한다(Evangelicals Concerned, 1998년 봄호; Calvary Contender, 1998년 4월 15일). 페기 캄폴로(Peggy Campolo) 페기 캄폴로는 최근에 친동성애적인 '관심있는 복음주의자들' 모임에서 연설하였다. '사랑의 하나님'께 드린 그의 시작 기도는 예수님을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거룩한 땅 위에 서 있다"고 말한 후, 그 여자는 뒤에 그의 중앙침례교회(ABC 소속)에서의 첫번째 동성애자 결혼식은 그에게는 "고상하고 거룩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교회를 동성애자들을 위한 '안전한 장소'라고 불렀고 그들은 거기에서 '환영을 받고 찬성을 받는다'고 했다. 거듭거듭 반복해서 그는 '나의 남자 동성애 형제들과 여자 동성애 자매들'이라는 말을 했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의 눈 앞에서도 누구든지 그들이 평생 반려자로 선택하는 자들과 결혼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진술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의 남편[토니]은 1985년 하나님께서 기독교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모든 사람 속에 계시다고 말함으로써 곤란에 빠졌다. [그리고] 토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장소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봉사에서라고 말했다. . . . 토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장소에 관해서 바르게 생각했다." 그는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에서부터 그의 걸음을 시작했으나, 그 다음에 그는 그들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와 토니는 지난 19년 동안 매년 'P-타운'(카이프 캇에 있는 '동성애자' 여름 메카)으로 돌아갔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9월 1일.) 제리 팔웰(Jerry Falwell)의 애매한 태도 제리 팔웰은 최근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그의 말 전쟁에서 태도를 바꾸었고 그의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에서 200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200명의 동성애 행동주의자들을 접대하였다. 동성애 지도자 멜 화이트(Mel White)는 말하기를,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나라를 위해 위대한 순간을 가지고 있는데, 곧 동성애자들과 팔웰이 함께 예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팔웰은 여전히 동성애가 죄라고 믿지만, 그의 설교 중 그의 방문자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였다(Huntsville Times, 1999년 10월 25일). 타임지 1999년 11월 1일자는 팔웰에 대해 이렇게 인용했다: "만일 우리가 수백만명의 남녀 동성애자들에 대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가지려 한다면," 그는 '동성애적 변태자들(deviants)' 같은 용어들을 포기하며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의 용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1월 1일.) 비평 성경에서 처음 동성애를 말한 것은 소돔 고모라의 사건에서이다. 창세기 19:4-8,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는 말(웨네드아 오담)은 직역하면 '우리가 그들을 알도록'이라는 말이다. '안다'(야다)는 히브리어는 때때로 성관계를 의미하였다. 롯이 처녀 딸들을 내어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은 그것을 증거한다. 소돔 사람들은 동성애를 원한 것이었다. 오늘날도 동성애자들은 때때로 '소돔 사람들'(sodomites)이라고 불리운다. 사사 시대에도 소돔 시대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사사기 19장에 나오는 기브아의 죄악이 그것이다. 기브아의 불량배들도 거기 우거하는 노인의 집에 유숙하기 위해 들어온 레위인을 내어놓으라고 외쳤다. 22절,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웨네다엔누)." 동성애는 죄이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연합케 하신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넓게는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에 정죄된 음란에 포함된다. 그것은 음란한 변태적 성행위이다. 하나님은 죄악되고 음란했던 소돔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셨다. 사사 시대에 음란했던 기브아와 베냐민 지파는 그 죄로 인하여 거의 전멸되었었다. 성경은 부부 관계를 벗어난 결혼 전 혹은 결혼 외의 성행위를 음란한 죄로 정죄하며, 특히 동성간의 혹은 심지어 짐승과의 성행위를 가증한 죄악으로 정죄한다. 레위기 18:22, 23,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perversion, 변태적 행위)이니라." 그 외에도 구약은 미동(美童)과 남색(男色)하는 자들을 정죄했다. 신명기 23:17, 18,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열왕기상 14:24; 15:12; 22:46; 열왕기하 23:7. 신약성경도 동성애를 중요한 죄로 간주하며 그 죄를 짓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로마서 1: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6:9, 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말라코스, 남창, 남자 동성애자)나 남색(아르세노코이테스, 동성애자)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디모데전서 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아르세노코이테스)며." 특히, 오늘날 동성애를 통해 에이즈 질병이 많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징벌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보도에 의하면, 동성애 남자들이 에이즈로 죽는 평균 연령은 39세요, 다른 원인으로 죽는 연령이 41세요, 오직 2% 미만이 늙도록 산다. 또한 동성애자들은 25배나 더 자살율이 높고 14배나 더 매독 감염 가능성이 높고, 수천배 더 에이즈 감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Calvary Contender, 1993년 12월 1일).
분석 오늘날 세속 사회에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움직임이 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997년 9월호에 의하면, 네델란드는 가망 없는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부터 만성적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 신체적 질병을 위한 안락사로부터 심리적 고통을 위한 안락사로, 그리고 자발적 안락사로부터 비자발적 안락사로 움직여왔다. 일단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 죽이는 것이 허용되면, 의사들이 보다 더 회색 지역[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들]로 그 선을 넘는 것이 더 쉽다. 환자의 '죽을 권리'가 교묘하게 환자의 '죽을 의무'와 의사의 '죽일 면허증'이 된다. '죽음의 의사'(Dr. Death)라는 별명이 있는 잭 케보키안(Jack Kevorkian)은 적어도 45건의 '자살'을 도왔다. 그 중 많은 이들은 최종적으로 아픈 상태가 아니었고 몇 경우는 질병의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매스컴은 케보키안을 의사라고 부름으로써 그의 행위들을 정당화하지만, 그의 의사 면허증이 1991년에 중지되었음을 말하지 않는다(Calvary Contender, 1997년 9월 15일). 의료 윤리지(Journal of Medical Ethics) 1999년 2월호의 한 보고서는 네델란드에서 남의 도움을 받은 자살의 다섯 사건 중 하나는 환자의 동의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World, 1999년 3월 13일). 그 조사는 또한 1995년에 네델란드의 안락사(安樂死)의 거의 3분의 2가 법이 요구하는 대로 보고되지 않았다고 나타냈다. 의사들은 환자들을 죽이는 위험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4월 1일.)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교회 안에도 들어오고 있다. 1991년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하고 자살을 허용하는 최초의 대교단이 되게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Calvary Contender, 1991년 8월 1일).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1999년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교의 생명 윤리학 분야의 교수직에 임명되었다(Calvary Contender, 1999년 7월 1일). 피터 싱어에 의하면, 갓난 아기는 돼지와 소와 개보다 생명에 대한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는 척추 장애나 혈우병(血友病) 등을 가진 갓난 아기들을 죽일(단지 치료를 보류하는 것이 아니고) 권리를 환자들이나 의사들에게 주기를 원한다(New Americans, 1999년 9월 27일). 리더스 다이제스트 1999년 10월호에 의하면, 그는 "불구가 된 어린 아기를 죽이는 것은 한 인간을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동등하지 않다"고 말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0월 15일.) 비평 안락사는 늙은이나 심히 병약한 자를 고의적으로 죽이는 일종의 살인 행위이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것은 자신이나 타인에 의해 고의적으로 손상되어서는 안된다. 남의 생명에 대한 고의적 손상은 분명히 살인의 죄에 해당한다.
결론 이와 같이, 현대 교회는 교리적으로 심히 배교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윤리적으로도 심히 부패되어 있다. 경건한 예배가 부패되고 있고 경건한 교회 음악이 부패되고 있다. 하나님이 가정과 교회에 주신 남녀의 기능적 구별의 선이 무너지고 있다. 낙태는 가장 두려운 현대 사회의 죄악이 되고 있고 이것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오고 있다. 음란의 극단적인 형태인 동성애는 교회들 속에 깊숙이 들어와 성직자들의 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안락사를 인정하는 교회들이 나타났다. 우리가 깨어 이 현대 교회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분별하고 대항하지 않으면 우리와 우리의 교회도 그 순수성과 거룩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믿음은 행위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바른 믿음은 반드시 거룩한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구원의 목표는 단순히 지식의 새로움이 아니고 전인격적 새로움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그러므로 모든 불경건과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교훈하신 대로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이 믿고 행하기를 힘써온 대로 우리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삶으로써 주를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악하고 음란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흠과 점이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
|